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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수요일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3월 1일을 기념해서 만세라도 불러볼까 했지만 게으름을 피웠더니 태극기도 없고, 자리도 애매하고... 그래서 그냥 여기라도...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선거에서 전라도 지역 몰표는 전두환 집권 후부터 확연히 나타났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링크된 위키피디아 내용과 각 선거마다 변하는 지역별 개표 결과를 살펴보면 전두환 집권 후부터 전라남북도, 광주광역시의 표는 김대중, 노무현, 정동영에게 90% 넘는 투표를 했다. 비록 1967년과 1971년에도 윤보선과 김대중의 표가 많기는 했지만 완전한 몰표는 아니었다. 1963년 선거에서는 오히려 박정희 지지율이 더 높았다.

이러한 투표 결과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일들이 호남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이승만 대통령 선거

제헌국회 총선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55석을 차지하여 무소속 다음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내었고, 김구와 김규식 등 남북협상파는 제헌국회 총선에 불참하였다. 제헌국회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나서 2위 김구, 3위 안재홍을 누르고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 2)

1950년 선거 결과 야당이 압승하여 재선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부산정치파동을 통해 대통령직선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개헌과 선거법이 공표되면서 그로부터 1주일 후인 7월 26일까지 후보 등록을 마감하도록 하고, 그후 10일 만에 선거를 치러 이승만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3) 4)

1948년 제정된 헌법과 1952년 개정된 헌법의 제55조는 대통령의 임기와 연임에 대하여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승만은 8년 넘게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는 내용이 담긴 개헌안을 사사오입 개헌으로 통과시켰다. 1956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 이승만,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신익희, 부통령 후보 장면을, 진보당창당추진위원회는 대통령 후보 조봉암을 내세웠다. 신익희와 조봉암은 비밀회동을 가지고 신익희로 단일후보를 내기로 하였으나 신익희가 유세하는 도중 뇌일혈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결국 이승만 5,046,437표, 조봉암 2,163,808표, 무효표 1,856,818표로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5) 6)

참고자료

  1. http://ko.wikipedia.org/wiki/대한독립촉성국민회
  2. http://ko.wikipedia.org/wiki/이승만
  3. 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_제2대_대통령_선거
  4. http://ko.wikipedia.org/wiki/부산_정치_파동
  5. 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_제3대_대통령_선거
  6. http://ko.wikipedia.org/wiki/사사오입_개헌